-


1.
 지쳤다는게뭐니,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. 네 사소한 오해와 사소한 실망에 대단한 자존심이 멈추질 않는다. 나는 아마 니가 물어봐주기전까진 입다물고 있을거야, 그럴테지. 그게 너무 답답하지만, 내 이 삐뚤빼뚤한 자존심은 정말..

2.

지난 여름쯤엔 이곳에 키큰 해바라기가 있었다. 고흐가 값싼 카드뮴노랑을 덧칠하고 또 덧칠해서 변색을 막고 싶었던, 그 원형의 노랑이였을 것이다, 라고 추측해본다. 
 
 개인적으로 목련꽃을 혐오한다.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, 그냥 싫기도 하다. 꽃은 시들기위해 핀다고들 하는데, 이 목련꽃은 꼭 진 뒤에 오래된 바나나껍질처럼 늘어져있다. 밟히면 신발자국이 그대로 남는다. 원래 하얀색이였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스팔트위엔 어울리지 않는다. 

 자주지나다니는 슈퍼 앞 육교를 건너 계단을 내려올때쯤엔 목련나무 두그루가 보인다. 자전거 도로 위로 사납게 흩어진 그 갈색 잔여물들을 보면서, 나는 한창 잊고싶은 기억들을 다시 뱉고 삼키고 뱉고 삼키고 마음은 한창을 울력질당하다가, 몇걸음 멈추고, 그러다 다시 뒤돌아보고, 한숨을 쉬다가, 다시 길을 가고. 했을 뿐이다.

3.

반복이 될 뿐이니 난 지루하다. 솔직히 그렇다. 어차피 다 익숙하고 뻔한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될 것이다.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, 그 부정하는 것조차 너무 뻔하게 봐왔던 것이다. 너에겐 소중한 진심이겠지. 무미건조한 죄책감이 아주 잠깐 든다. 사람의 진심만큼 믿지 못할게 또 있을까?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. 확실히 내 나사 몇개가 없어진건 알겠다. 
 
4.
애정결핍도 진화하니 이렇게 은둔형이 되는구만ㅋㅋㅋ


5.

  네가 말할 것들. 이상한 사정. 겨울날의 오해. 스치던 손끝.  갈색 신발을 신고 나온 네가 나의 구두를 묻다.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? 붉은구두. 그 동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 잘린 발목이 춤을 추며 가시밭으로 가는 부분. 

나도 누가 멋대로 춤추는 내 구두를 벗겨줬으면 좋겠어. 벗겨지지 않는다면 발목이라도 잘라줬으면 좋겠어. 가시밭에서 춤을 추니 온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. 그런 의미에서 저 동화는 해피엔딩. 현실은, 음,  누가 내 발목을 잘라주겠어? 현실은, 그러니까, 가시밭에서 붉은 구두를 신은채로 춤을 추는 페이지에서 멈춤. 그리고, 반복.

6.

 왜 네가 나한테 그런 대단한 배려를 했는지,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이기심을 보여줬는지 모르겠다. 항상 난 오래된 일로 뒷북을 치는 것 같다. 너는 별 말도 안했지. 의아하다고 생각했다.  난 잠깐 너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나보다. 너의 지독한 승부욕과 나의 말도 안되는 무기력이 이상하게 충돌했던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. 네가 몇번을 머뭇거리다 " 안변했는데." " 라고 말했지만, 넌 그전에 한 수백번은 날 보고 "변했네." 라고 말했지. 그것도 좀 우습다.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난 딱히 네가 변했는지 안변했는지도 모르겠다. 굳이 따지자면 변하기야 했겠지. 근데 그런거 말고 느낌같은 것. 변하는 쪽으로는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.


 이제와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무엇이 변할까? 다만 나는 왜 자꾸 너를 떠올리는걸까.  굳이 따지자면 연애감정으로 사랑하지도 않았고. ( 다른 사람을 더 사랑했었지. 그 사람도 생각 많이 하긴 하는데, 얘만큼이나.) 쩝. 

 사실 가장 내가 그리운 것은, 그 겨울날 네가 화난 얼굴로, 화를 참는 목소리로, 나에게 말하던 그 표정인것 같다. 왜일까. 사람은 웃는게 가장 예쁘다는데, 나는 왜 네 화난 얼굴이 이토록이나 그리울까. 
 
 그 뒤로, 넌 단 한번도 나한테 화낸적이 없었지. 이게 변한건가, 라고 생각하면 네가 웃을까? 

7.